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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트럼프 분노에 ‘백기 투항’..통화 후 39% 관세 때려

미국과 스위스 정상은 현지 시각으로 지난달 31일 오후 8시, 미국 동부 기준으로 오후 2시에 전화통화를 가졌다. 이는 트럼프가 설정한 무역 합의 마감 시한을 불과 10시간 앞둔 시점으로, 합의가 성사되지 않을 경우 스위스산 수입품에 대해 31%의 상호관세가 적용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통화에서 양국 정상이 인식하는 통상 현안의 온도차는 컸다.
트럼프는 통화에서 연간 400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스위스의 대미 무역흑자를 문제 삼으며, 이를 '미국으로부터 돈을 훔치는 것과 같다'고 표현하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에 대해 스위스 측은 명확한 해소 방안을 내놓지 못했고, 결국 트럼프는 격노한 채 통화 수 시간 후 기존 예고보다도 높은 39%의 관세를 예고하며 사실상 보복 조치를 단행했다.
스위스 정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켈러-주터 대통령은 다음날인 8월 1일, “무역적자에 상응하는 관세율을 부과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상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하며, 협상을 위해 워싱턴 방문 가능성에 대해서도 “양측 입장이 좁혀져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번 조치로 인해 스위스는 관세가 15%에 불과한 EU 국가들에 비해 무역에서 현저한 불이익을 감수하게 됐다.

문제는 스위스가 무역협상을 단순한 기술적 합의로 판단했던 데 있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양국 실무진은 이미 7월 초 합의 초안을 작성했고, 스위스 정부는 이를 7월 4일 승인했다. 미국 측에서도 재무부와 무역대표부가 초안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최종 승인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이 스위스에는 결정적 오판이었다. 블룸버그는 “트럼프와의 막판 통화에서 스위스는 협상이 완결되지 않았음을 깨닫는 혹독한 현실 점검을 당했다”고 평했다.
익명을 요구한 백악관 관계자는 “스위스가 무역장벽 완화에 실질적 양보를 거부했고, 부유한 국가는 그런 양보 없이는 합의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스위스 수출 산업, 특히 제약업계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스위스의 대미 수출 중 60%가 제약 제품에 해당하며, 이 부문은 이미 트럼프 행정부의 약가 인하 압박으로 곤란을 겪고 있다.
실제로 초안에는 스위스 제약사들이 미국에 의약품을 수출할 때 관세 면제를 받는 내용이 담겼던 것으로 전해졌지만, 트럼프 측은 이를 철회한 상태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는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스위스산 의약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미국 내 생산을 유도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서명 직전 상태였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과장된 해석”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모든 협상은 지도자의 최종 지침 없이는 완결되지 않는다. 합의되기 전에는 아무것도 합의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타격은 고가 소비재 부문으로도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소비자들과 유통업체들은 스위스산 고가 시계에 대한 고율 관세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롤렉스, 오메가, 파텍필립 등 스위스 브랜드의 대표 제품들은 가격이 급등할 전망이다. 스위스 시계산업연맹은 공식 성명을 통해 “매우 실망했고 놀랐다”고 밝혔다. 고급 시계 산업 컨설턴트 올리버 뮐러는 “트럼프 본인도 스위스 시계를 즐겨 차는 사람인데, 이런 조치는 이해하기 어렵다”며 “미국 내 소비자가격은 최소 12~14%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번 관세 결정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닌, 트럼프식 외교의 전형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실무 합의와 무관하게 정상이 어떻게 느끼는지가 정책을 좌우하며, 그 감정적 반응 하나로 수십조 원대 무역이 흔들리는 불확실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스위스는 냉정하게 계산된 무역 기술의 승부에서 정무적 예측 실패라는 뼈아픈 교훈을 얻은 셈이다.